Wednesday, 16 September 2009

THE SECRET SERVANT - 'Daniel Silva'

영화가 현실을 앞서가는 것이 대개의 경우지만, 흔치 않게 현실이 영화를 뛰어넘는 경우를 가끔 우리는 목격합니다. 얼마 전, 자신을 유괴한 범인의 저택 뒷마당에 쳐진 낡은 텐트 안에서 18년을 세상과 단절된 채 어머니의 유괴범을 아빠로 둔 두 명의 아이와 함께 지내온 ‘제이시 리 두가드’의 이야기가 그랬고, 이전까지의 모든 헐리웃 블록버스터들을 시큰둥하게 만들며 아프가니스탄을 제2의 베트남으로 탈바꿈 시킨 계기가 됐던 ‘11/9’이 그랬습니다. ‘11/9’ 8주년 추모식이 얼마 전 있었습니다.

시간이 그렇게나 흘렀지만 여전히 저에게 아프가니스탄은 지도 위 어느 곳에 붙어있는 지도 알 수 없는 그 많은 ‘___스탄’ 중 하나 이상도 이하의 의미도 아닙니다. ‘부시’가 후세인 동상을 무너뜨렸을 때에도 이라크는 그저 우리가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해 넘어야 할 산들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이 무감각이, 서방세계들과 비교하자면 그래도 비교적 테러로부터 안전한 나라에 살고 있는 탓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군부와 그 계승자들이 잊을만하면 꺼내든 ‘북풍’ 으름장에 오랜 세월 시달리고, 근 십 여 년간 테러 못지않은 사고들(영풍 백화점, 성수대교, 대구 지하철)을 지켜보는 동안 알게 모르게 강화된 면역력 때문인지 그건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 무신경에서 비롯된 무지가 이 책를 지나는 동안 줄곧 저를 괴롭혔다는 것을 아무래도 고백해야 할 것 같습니다.

는 제가 읽었던 여느 스파이 소설들 이상으로 무미건조합니다. 그 무덤덤한 정도가 지나쳐, 같은 배경(이스라엘)을 두고 있는 <피닉스>같은 액션 활극을 은근히 기대했던 저로서는 때론 신경질이 날 정도였으니까요. 또 이 작품은 비슷한 장르의 그것들과 같지 않게 내용의 상당 부분을 등장인물들간의 대화로 진행시키고 있는데, 인물들간에 주고받는 대사들의 행간을 읽을 수 있을 때에 느낄 수 있는 재미를 표면적 의미를 이해하기에도 벅찬 제가 누리려고 하니 그저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곤욕이었습니다.

‘Anthony Horowitz’라는 영국 작가가 쓴 청소년용 스파이 소설 ‘Alex Rider’ 시리즈 중엔 한 테러범이 영국 시민을 볼모로 잡고 미국 정부와 협상을 벌인 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어린(?)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지나친 상상력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대해 작가는 이 책을 통해 그런 상황이 언제든 충분히 일어 날 수도 있음을 얘기합니다.

끝에 실린 '작가의 글'을 통해 글쓴이는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도 울고 갈 만한 냉정하고 차디찬 액션 장면 묘사에 해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책장을 넘기는 동안 줄곧 따라다녔던 ‘도대체 어디까지가 사실일까?’라는 의문에 대한 답도 그 글을 통해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성이 어디에서 기초한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적어도 저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4페이지에 이르는 ‘감사의 글’에 실려 있습니다.

‘THERE'S PROBABLY NO GOD. NOW STOP WORRYING AND ENJOY YOUR LIFE’ 작년 말인가 올해 초 영국의 버스에 한 무신론자 단체에 의해 실렸던 광고입니다. 책을 읽고 난 지금 이 문장의 한 단어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THERE'S PROBABLY NO GOD. NOW STOP KILLING AND ENJOY YOUR LIFE’

Friday, 4 September 2009

The Girl with the Dragon Tatoo - Stieg Larsson

길고 때론 지나치게 –혹은 쓸데없이- 장황한 묘사를 오랜 기자생활에서 온 몸에 밴 결벽증 정도로 받아들일 아량과 마지막 부분의 느슨하고 웅변적인 일장 연설을 작고한 작가가 마지막으로 세상에 던지고 간 메시지 정도로 생각해줄 용의가 있다면 이 책은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책입니다.

‘밀레니엄I-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가끔 독자들이 자신을 사로잡은 책에 대해 ‘다른 것들을 시시하게 보이게끔 만드는’ 작품이라고 추켜세우는 책들 중 하나에 들어가고도 남는 책입니다.

미래의 독자들이 ‘클래식’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줄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에도 공감합니다.

어느 책에 있던 ‘무조건 읽어라!’ 라는 카피는 이 책에 옮겨 심어도 좋을 겁니다.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지금은 평생을 따라다닐 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몇 줄 칭찬이 무의미한 작품입니다.


몇 년전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를 끝내고 난 뒤 며칠을 빠져 있었던 것처럼 아마도 한 동안은 이 책이 드리운 그림자에서 헤어나오기 힘들 것 같습니다. 이어서 읽고 있던 한기 도는 스릴러도 그래서 몇 장 읽다 덮었습니다. 밥은 먹고 살자면 그래도 제 정신인 것이 좀 더 낫지 싶어서요. 그래서 분위기가 조금은 더 밝은 책으로 갈아탔습니다.

어쩌다 길 위에서 북유럽 혹은 동유럽 여성들을 마주치곤 합니다. 하지만 앞으론 여느때처럼 그 진한 초록색 눈동자에 빠져들기 보다 행여 그 뒤에 숨어있을 음산한 비밀에 대해 더 눈독을 들일 것만 같습니다.

무성의해 보이는 표지(한글 번역본) 때문에 묻어두기엔 너무 아까운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