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9 October 2011

닥치고 정치 - 김 어준

10여년 전 딴지일보를 처음 접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무한 카타르시스를 느낀 나는 그 이후로 나도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가끔 투고질을 시작했고 그 중 하나가 우연히 총수의 눈에 띄었다. 총수는 낙하산 임명장을 보냈고 나는 10여년도 더 된 그 메일을 아직도 지우지 않은 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내 반골정신은 결혼과 함께 '가카'가 계신 당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평한 그 세월 동안 저멀리 심연으로 사라져버렸고 어느 '바보'의 억울한 죽음을 목격하고 나서야 다시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10여년이 흘러... 총수가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회오리를 일으키며... 

티셔츠 입고다닐 용기가 없어 '나꼼수'의 은혜받은 신도로서 불충한 마음 어쩔길 없어하던 차에 이 책이 나왔다. 할렐루야.

지상렬 뺨치는 외모를 표지 한가득 들이민 저 뻔뻔함. 저 뻔뻔함이 좋아서, 그리고 부러워서, 미치겠다. 근데 이 책 광고가 진짜 'ㅈㅅ일보'에 실릴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난다. ㅋㅋ... 그리고 나꼼수 23회, 지금까지도 목을 빼고 기다렸지만 다음 23회까지는 더 힘들것만 같다. 홍반장의 예고출현. 아...졸라 기대된다. 

Thursday, 6 October 2011

호숫가 살인사건 - 히가시노 게이고

2006년 3월 14일에 쓴 글.


"왜? 3인칭이었을까?"

마지막장을 덮는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소설의 전개나 구조상 주인공격인 '순스케'를 '나'로 하는 1인칭 시점이 더 어울려 보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작가의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1인칭 시점의 글쓰기가 훨씬 더 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또한 "기존의 추리소설을 뛰어넘는 벅찬감동이 있어 나로서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한 담당 편집자 '나혁진'님의 코멘트를 단순한 애사심 차원의 홍보용 멘트가 아닌 진심어린 독후감이라고 인정하고, 이 작품의 옮긴이가 후기에서 밝힌 '이 작품은 '입시지옥' '스와핑' '가정붕괴'등의 메세지를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했다'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3인칭이 아닌 1인칭을 썼더라면 그 효과가 더욱 커졌을 것이라는데도 개인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어쩌다 보니, 책보다 영화를 먼저 보게 됐네요. 대표적인 '작가'로 평가받는 아오야마 신지 감독이 만들었는데, 초반의 정밀한 묘사가 인상적입니다. 사람의 마음까지도, 젓어까지도 투영되는 듯한 영화더군요. 막판이 너무 설교적이란 생각이 듭니다만,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경계에 있는 추리소설이 더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굳이 추리기법 차용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위 글은 '김봉석'님께서 '비평과 칼럼'란에 실린 '임석원'님의 같은 책에 대한 비평글에 다신 답글 입니다.(이런식으로 빌려온 것이 불쾌하셨다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전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 밑줄친 부분을 보면 이 영화의 감독 역시 이 소설이 어떤 교훈적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 보입니다. 반대로 '김봉석'님은 그 영화의 막판 '설교'가 불편하셨던 모양입니다. 전 이 답글을 읽고 나름대로 가졌던 '추측'을 확신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 추측이란 소설 <호숫가 살인사건>은 읽는 이가 누구냐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읽혀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을 다 읽은 지금 전 그 어떤 감동도 느끼질 못했고 그 어떤 사회적 메세지도 전달 받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에겐 입시경쟁이니 가정파괴니 하는 모든 것이 그저 결말의 극적 반전까지 가는데 필요한 하나의 '장치'로 밖에는 보이질 않습니다.

(일본에선 굉장히 뛰어난 운동선수가 나왔을 때 '괴물'이란 애칭(?)을 붙여주는 걸 가끔씩 보아왔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란 작가와는 처음 이지만 웬지 그가 '괴물'이란 수식어와 아주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소설 <호숫가 살인사건>은 마치 유아용 스케치북 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한 밑그림만 그려져 있고 거기에 어떤 색을 칠하느냐에 따라 독자가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그런 스케치북 말입니다 . "그건 어느 소설이나 마찬가지 아니냐?" 라고 물으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보통의 소설들은 '어쩌면 내 생각과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정도가 대부분이지 이 작품처럼 고의로 독자의 자의적 해석을 유도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봅니다.

전 3인칭 시점이 1인칭이나 전지적 시점에 비해 독자에게 전달되는 정보의 양이 제한 된다는 점에서 추리장르의 소설쓰기에 훨씬 더 적합한 글쓰기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다르게 이야기하면 독자가, 작품속 사건의 내용이나 등장인물의 캐릭터에 대해 주인공이나 작가의 개입을 덜 받게 된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이유 때문에 '히가시노 게이고'가 쓰기 편한 1인칭 대신 3인칭 시점을 택한 것이 아닐까 추측하는 것입니다.

덧붙여 한가지, 이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신기했던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전에 읽었던 그 어떤 책보다, 배경이 되는 장소의 그림이나 주인공들의 움직임이 훨씬 더 선명하게 떠올져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것이 전적으로 작가의 능력인지 아니면 구질구질한 부연설명을 보태지 않고 독자의 상상력에 맡겼기 때문인지 그것까지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여기까지가 원래 쓰려던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아래에는 소설 <호숫가 살인사건>의 결말에 대한 '고자질'이 있습니다. 책을 읽으신 분들께서만 스크롤바를 내리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왜? 3인칭이 아니고서는 절대 안되는지."에 대한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 생각은 바로 작가가 이 작품의 '극적 반전'을 위해서 1인칭이 아닌 3인칭 시점을 절대적으로 필요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주인공격인 '순스케'는 아내인 '미나코'가 자신의 숨겨논 애인 '다카시나 에리코'를 죽였다는 사실을 처음엔 순수히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사건의 진위에 의심을 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끝에 가서 결국 자신의 힘으로 진실을 밝혀내게 되는데요... 자신의 아내가 한 살떨리는 거짓말...정말 남편이 못느꼈을까? 

만약 이 소설이 1인칭으로 쓰여졌다면 거짓말장이 '미나케'의 남편 '순스케'는 자신이 가진 더 많은 정보를 독자에게 내놓아야 했을 것입니다. 당연히 결말의 반전이 주는 스릴도 떨어졌을 테지요. 그러지 않고,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될 수 있는 한 감추기에 급급했더라면 어쩌면 자신이 쓴 작품 중간에 '독자에게 보내는 도전장'을 날린 '엘러리 퀸'의 비난을 면치 못하는 일이 생겼을 런지도 모릅니다. 

작가가 3인칭을 선택한 것엔 이런 이유도 포함된 것이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게임의 이름은 유괴 - 히가시노 게이고

2006년 3월 14일에 쓴 글.

지난번 <호숫가 살인사건>을 읽고나서 올린 글에 '히가시노 게이고'란 작가가 '괴물'이란 수식어와 잘 어울릴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 이유는, 간결하면서도 마치 공중 줄타기를 하는 듯한 아슬아슬한 대화를 통해 표현해낸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가 너무나 비범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백미는 바로 도입부 장면입니다. 주차장에 도착한 주인공 순스케가 차에서 내려 별장으로 가는 도중 따로 마련된 테니스 코트에서 그의 아내와 아내가 멤버로 가입되어 있는 클럽 회원들과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는 장면까지의 짧은 부분의 묘사만을 통해 작가는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지배하는데 필요한 음습함과 불온함을 단번에 획득하고 있습니다.

기대가 컸던 탓인지 그래서 <게임의 이름은 유괴>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시점이 1인칭이다 보니 흥미진진한 인물들간 대화가 줄어든 것도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좀 산만한것 같기도 하고 웬지 짜임새가 없다는 느낌도 들었고 결말을 읽은 뒤 되짚어 보면 트릭 자체도 좀 엉성한것 같고 여하튼 - 워낙 잘 읽히는 소설이다 보니 앉은 자리에서 화장실 갈 때랑 밥먹을 때 빼고는 궁둥이를 떼지 않고 끝을 냈지만 - '괴물' 이야기를 괜히 했나? 싶은 후회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장경현'님의 비평글을 읽었습니다.

여기 밑엔 작품의 결말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책을 읽을 읽으신 분들 께서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위의 글만 읽고 작품에 대한 편견이 생기면 안되는데...-.-;;)









"확실히 읽으면서도 수상한 장면들이 역시 음모의 진행 과정임이 밝혀집니다. 그렇게 용의주도한 주인공이 왜 그걸 의심을 안 했을까요. 감상적인 상황이라고 해도 시신에 그렇게 조작을 한다면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릴 텐데 잠깐 자동차 바깥에 서 있던 것만으로 그게 가능했을지 의문입니다. 뭐 따지고 들면 이런 것이 여럿 걸리긴 하지만..."

이 부분이었습니다. 뭔가가 머리에서 번쩍했습니다. 왜? '순스케'는 '가쓰라기 주리'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을까? 너무 쉽게 거짓말에 속아넘어가고...그렇게 매사에 철두철미한 사람이 왜?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제게.

간단했습니다. '사쿠마 순스케'가 남자였기 때문입니다. 전 위의 글에서 웬지 트릭이 엉성한 것 같다고 했는데요, 만약 여성 독자가 이 작품을 꼼꼼히 읽어내려 갔다면 절대로 놓칠 수 없는 너무나 분명한 헛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 생각이 떠오를 때 저도 모르게 깜짝 놀랐습니다.) 

그것은 바로 완벽주의 '순스케'가, 자신이 '가쓰라기' 사장 첩의 딸이며 어릴적 생모에게서 길러지다 부모가 죽고 홀로 남자, 사장이 데려왔다고 이야기한 '주리'의 말을 아무런 의심없이 곧이 곧대로 믿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순스케'의 직업이나 인맥을 살펴보면 그 정도의 사실 확인은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어딘가 모르게 개운치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틀어버릴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야기 자체가 아예 도루묵이 되니까요.

아마도, 작가는 주인공 '순스케'가 여자에게 그렇게 호락호락 넘어가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걸 독자에게 심어줄 필요가 꼭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순스케'의 행동이나 생각에 독자들이 절대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말이죠. 적어도 상대하는 여성에 관한 '순스케'의 장악능력(?)에 관해서 만큼은...

이 책의 도입부는 그래서 교묘합니다. 작품 전체를 놓고봤을 때 '결혼이란 말을 꺼냈다고 해서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해온 여성을 단번에 내쳐버리는' 이 부분은 '순스케' 성격의 한 단면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사실 크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진 않습니다. 그야말로 독자의 눈을 멀게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인 셈이죠.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전 '히가시노 게이고'란 작가에게 다시 한번 놀라게 되었습니다. 괴물작가. 책 제목 은 '순스케'와 '가쓰라기'가 벌이는 게임을 두고 한 말이 아니라 어쩌면 작가가 독자들에게 던진 선전포고 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